할반편 

    더보기

    샬레이안을 돌아다니며 세계구원에 일조하고 있을 때 쯤이었다. 지나가다가 문득 본게 전부지만 눈에 띄는 외모를 한 남성이 자꾸 아른거렸다.그도 그럴것이 굳이 찾아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외모만으로도 끌리다니 127년을 살았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재판소에서 99현인과 빛의 전사로서 만나게 되었다. 재판 중에는 눈치채지 못했으나 스쳐지나가며 펄럭이는 베일 사이로 보이는 요아힘을 놓칠리가 없었다. 상황은 좋지 않았음에도 할반은 미소를 지었다. 베일 너머에서도 발견할 정도라니. 할반은 그의 이름을 굳이 알아뒀다. 밑작업이랄까?


    결국 종말이 도래했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으며 이제는 과거에 관여하게 되었다. 할반 또한 진지하게 사태에 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든 백년이상 본인이 사랑하고 쟁취하기 위해 싸워온 동료들,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들. 할반은 그렇게 현재를 뛰어넘어 과거로 진입하게 되었다.


    엘피스의 투닥거리는 두 고대인을 보니 옛날 동료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종말을 만났다. 헤르메스가 죽음에 대해 고뇌할 때 할반은 새삼 외로움을 느꼈다. 종족 특성상 오래 살아가며 많은 이들을 먼저 보내야 했다. 그리고…지금 생각하는 그 아름다운 사람 또한.하지만 우선 지켜내야 한다. 헤르메스의 마음에 깊이 공감했으나 그렇기에 그가 원인인 것도 분명했다.


    종언을 노래 하는자는 강했다. 절망도 깊었다. 수많은 절망과 질투가 옭아맸다. 그래도 할반은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동료들과, 수없이 많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위해. 외로움이 뭔지 알기에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진정한 해방을…


    제노스가 나타나서 흥을 깼지만 덕분에 종언과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녀들을 해방하고 희망을 안겨준 뒤 제노스가 또 “벗”이라고 하자마자 벌침에 잔득 맞은마냥 따가운 짜증이 밀려왔다. 드디어 본인을 봐줄거라고 생각하는 제노스를 보며 ‘내가 지금 관심 있는건 그 사람 뿐이야’라고 생각하자 마자 한치의 망설임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저놈을 반드시 조지고 그사람을 만나러 가리라. 베네스가 준 기회와 그사람을 만나러 살아야 한다는 희망이 할반을 걷게 했다.


    라그나로크를 타고 돌아 온 뒤 축제가 열린 샬레이안, 물론 새벽의 일원들과 함께였지만 요아힘을 발견하고는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요아힘에게 다가가는 할반,새벽의 일원들은 이미 할반의 성정을 알기에 오늘은 다른곳에서 자야겠다고 다짐했다.
    술을 마시는 요아힘은 생긴것과 달리 (할반은 사실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주정이라면 다른 쪽일 줄 알았다)엄청나게 귀여운 주정을 부리고 있었다. 할반은 뻔뻔하게 자신을 27세로 소개하며 작업을 걸 생각이었으나 이런 맙소사, 넘어갈 수 없는 주정….이야기가 오가며 귀여운 뽀뽀가 따라왔다. 그의 입술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니. 게다가 서툰듯 귀여운 뽀뽀는 할반의 이성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어느세 그의 귀엽고 아름다운 입술에 깊은 키스를 나누어줬다. 주위가 놀라움에 잠시 조용해질정도로 조금 오래하는 질펀한 진한 키스. 혀가 얽히며 할반은 황홀했다. 형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흥분한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는 요아힘을 안아들고 발데시온 분관의 방으로 갔다. 그 이후는….. 아무튼 일어난 요아힘의 몸에는 엄청난 숫자의 키스마크와 손자국이 생겼으리라. 그리고 누군가의 말로 처음에 말했던 나이와는 100살이나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상대는 빛의 전사였다.둘의 관계에 대한 소문은 누가 살포한 마냥 퍼져나갔다.


    누군가에게 정을 계속 붙여준지가 언제인지, 하루에 끝날것 같았던 밤은 연일 일어났다. 핑계를 대며 대부분을 샬레이안에 머물렀다. 그리고 어딜 가든 그가 상각났다. 귀여운것을 보면 그가 먼저 생각났다. 그리고 돌아오면 가져다가 안겨주었다.


    그러다 엘피스의 의뢰 중 판데모니움에 이상이 생긴걸 알게 되었고 진입하자마자 연이은 전투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넝마가 되어 돌아오니 샬레이안에 그는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시차가 있었는지 엘피스에서는 몇시간이었으나 이미 여긴 2주 이상 지난 상태였다. 빛전의 권한으로 알아내보니 그는 누님과 에오르제아로 떠났다고 한다. 이런 젠장.


    과연 넝마인 채로 알아낸 곳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짧아진 머리, 전과 다른 호쾌한 의상. 그것 또한 아름다웠지만 중요한건 사과였다. 본인의 과업을 생각하면 갑자기 사라진 본인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아힘은 올곧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다려 줬다는 생각에 기뻤다.


    할반은 오래토록 자신의 가슴속에 외로움을 채워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것도, 그 사람이 여기에 있다는 것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그렇게 더욱 소중히, 매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요하임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와 행복에 겨운 밤을 보내고 자는 모습을 볼때면 새벽별빛에도 잔잔히 빛나는 모습을 한참 보다 잠이 들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할반은 이미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아힘편

    더보기

    진행하던 연구들이 모두 동결된 채 달 이주 계획을 위해 동분서주 중. 영웅에 대한 소문들이 종종 들려오곤 했으나 라비린토스와 연구실들을 오가며 일에 파묻혀있던터라 관심을 둘 여력은 없었다.


    영웅과 새벽의 처우에 대한 재판을 위해 99현인으로서 참석. 이때 처음으로 영웅의 생김새를 봤다. 엄청난 무위로 유명한만큼 그간 더 위압감 넘치는 체격의 인물로 상상했던 것일까, 베일 너머로 보이는 실루엣은 키가 크고 늘씬한 체격의 남성 비에라였다. 판결이 결정된 후 재판장에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리던 차에 흔들린 베일 사이로 얼핏 눈이 마주친 것도 같다. 밝은 금안이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영웅의 행보는 어찌나 기적과도 같은지. 초조함과 염려, 기대를 품고 라그나로크를 타고 떠났던 영웅과 새벽 일행의 귀환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환호가 학문의 도시를 휩쓸고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듀나미스와 외계를 항해하고 돌아온 라그나로크에 기록 되었을 데이터, 레포릿들과의 정보 교환 등 호기심이 드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으나 새로운 연구 가능성에 눈 먼 학자들이 너도나도 몰려들어 아마 당장은 손대기 어려울 듯 했다. 그간 쌓여있던 긴장과 걱정이 해소된 지금은 기쁨을 나눌 때가 아니겠냐는 말에 일단 당장은 지금의 분위기에 따르기로 했다. 밤이 되자 여기저기서 술잔이 오가기 시작한다. 술은 좋아하나 주량은 빈약한 관계로 입술만 축이는 정도로만 입에 댔으나 자꾸 권해지는 바람에 들이킨 한두모금들이 쌓여 결국 주량을 넘기고 말았다.


    매번 취하면 옆사람에게 찰싹 달라붙거나 입술을 들이대는 그 몹쓸 습관 좀 고쳐!하던 누나의 외침은 이미 몽롱해진 정신머리가 멀리 내보내기 시작했다. 주변의 소음 속에서도 귓가에 감기는 목소리와 흐려진 시야 안에서도 촘촘히 난 속눈썹에 둘러싸인 금색 눈동자가 유독 반짝거려 보인다. 나이를 물어보니 27살이란다. 그 나이에 쌓은 엄청난 업적들에 감탄하는 사이 살갑게 형, 형 하며 불러오는 목소리에 실없이 웃으며 이런저런 대화들이 오가는 중에 취기가 부풀린 근거없는 친밀감에 풀린 몸이 옆에 있는 이에게 기울었다. 취기에 뜨끈해진 뺨과 이마를 단단한 어깨에 비비다 문득 보이는 뺨이 유독 매끄러워 보여 한두번쯤 입술을 갖다댔던 것도 같다.


    그러다 문득 입술에 닿아온 감촉과 함께 따라온 진득한 입맞춤이 숨이 차도록 퍼부어졌다. 이후 몸이 들려 거리의 빛들이 일렁이는걸 보다가 방안으로 들어선 후 생전 처음 겪어보는 열기에 그대로 휘말려 들어갔다.


    깨고보니 검고 늘씬한 남성 비에라와 한 침대 안이었다. 낯이 익은 얼굴에 기억을 되뇌이니 세상에. 나 영웅이랑 뭘한거지?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도시 내로 퍼져나가는 소문을 알면서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그저 찾아오는 이를 보면 가슴 안쪽이 소란하고 혼자 있다가도 계속 생각나는데 얼굴을 보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영문 모를 선물들이 하나둘씩 생겨나 방 한켠에 자리를 잡고 밤마다 감겨오는 체온과 아프도록 밀려들어오는 쾌락에 울며 목이 쉬도록 이름을 불러댔다. 할반. 그러다가 나중에 속삭이듯 알려준 이름의 애칭으로 루.


    잠깐 다녀온다던 사람이 소식이 끊겼다. 하늘로 솟은 듯 땅으로 꺼진 듯 쥐어주고 간 링크펄은 묵묵부답이라 새벽에 물어보니 그네들도 영문을 모르는 눈치다.
    -

    원래 그런 사람이다, 사람을 가지고 놀다가 질리면 버리고 간다던데 하는 소문들에 그런걸까 싶다가도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도시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으니 밖일 수도 있겠다. 멈춰져있던 연구 프로젝트들 중 하나를 골라 현장 조사를 빌미로 본토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직접 찾아보고 물어보자. 정말로 소문대로라면…생각만해도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어쩔 수 없겠지.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보단 직접 뛰어들어 부딪혀봐야겠다.

     

    에오르제아는 나고 자라 평생을 살아온 샬레이안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공기부터 틀렸고 또 너무 넓었다. 누나의 인맥을 이용해 수소문을 하기 위해 처음 자리를 잡은 다날란은 너무도 더워 목덜미에 들러붙는 머리칼을 견딜 수가 없었다. 짧게 잘라버리고 꼭꼭 싸매 입던 옷차림도 어느정도 풀어버렸다. 과연 이 답답함이 더위뿐이었던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외에는 막연히 차오르는 불안감과 그리움을 견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저 삼킬 뿐.

     

    홀연히 사라졌던 사람이 다시 홀연히 나타났다.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눈 앞에 뛰어든 할반을 보니 그간 만나면 말하겠다 생각해뒀던 말들은 하나도 떠오르질 않았다.

    댓글